[1] 이 사건 쟁점
쟁점은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의 인정 여부이다. 이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그 금전은 채권양도인이 아니라 채권양수인이 소유하고, 나아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채권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본 종전 판례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2] 이 사건 쟁점에 관한 판단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양도 채권의 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신임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위와 같이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에 관하여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채권양도인이 위 금전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3]. 횡령죄의 구성요건으로서 재물의 타인성
(1)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재물을 횡령하는 것을 처벌하는 범죄이므로,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횡령의 대상이 된 재물이 타인의 소유이어야 한다. 종전 판례는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지 않고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채권양도의 당연한 귀결로서 금전이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 사이에서 채권양수인의 소유에 속하게 된다는 전제에서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채권양도에 의하여 양도된 채권이 동일성을 잃지 않고 채권양도인으로부터 채권양수인에게 이전되더라도, 채권양도인이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금전의 소유권 귀속은 채권의 이전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채권 자체와 채권의 목적물인 금전은 엄연히 구별되므로, 채권양도에 따라 채권이 이전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의 목적물인 금전의 소유권까지 당연히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
(2) 판례는 금전의 횡령이 문제된 경우 재물의 타인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일반적인 재물과 동일하게 민법, 상법 그 밖의 실체법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일정한 경우 민법상 소유권과는 다른 형법상 금전 소유권 개념을 인정해 왔다. 목적과 용도를 정하여 위탁한 금전은 정해진 목적과 용도에 사용될 때까지 이에 대한 소유권이 위탁자에게 유보되어 있고, 금전의 수수를 수반하는 사무처리를 위임받은 자가 위임자를 위하여 제3자로부터 수령한 금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령과 동시에 위임자의 소유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때 수령한 금전이 위임자를 위하여 수령한 것인지는 수령의 원인이 된 법률관계의 성질과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후에 스스로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에 대해서는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 사이에 어떠한 위탁관계가 설정된 적이 없다. 채권양수인은 채권양도계약에 따라 채권양도인으로부터 채권을 이전받을 뿐이고, 별도의 약정이나 그 밖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채권양도인에게 채권의 추심이나 수령을 위임하거나 채권의 목적물인 금전을 위탁한 것이 아니다.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기 전 채권양도인과 채무자, 채권양수인 세 당사자의 법률관계와 의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채권양도인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대신 금전을 수령하였다거나, 그 밖에 다른 원인으로 채권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이 수령과 동시에 채권양수인의 소유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금전의 교부행위가 변제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이 상대방에게 교부됨으로써 그 소유권이 상대방에게 이전된다. 따라서 채무자가 채권양도인에게 금전을 지급한 것은 자신의 채권자인 채권양도인에게 금전의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유효한 변제를 하여 채권을 소멸시킬 의사에 따른 것이고, 채권양도인 역시 자신이 금전의 소유권을 취득할 의사로 수령한 것이 분명하다. 채권양수인의 의사는 자신이 채권을 온전히 이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대항요건을 갖추어 달라는 것이지, 채권양도인으로 하여금 대신 채권을 추심하거나 금전을 수령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3) 횡령죄에서 재물의 타인성과 관련하여 대법원 판례가 유지해 온 형법상 금전 소유권 개념에 관한 법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
[4] 채권양도인의 채권양수인을 위한 보관자 지위
(1)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이어야 한다. 여기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따라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그 밖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신임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종전 판례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채권의 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고, 이러한 채권양도인의 사무처리를 통하여 채권양수인이 유효하게 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신임관계가 인정된다고 보아, 이를 근거로 횡령죄에서 보관자 지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채권양도인은 채권양수인과 사이에 채권양도계약 또는 채권양도의 원인이 된 계약에 따른 채권 · 채무관계에 있을 뿐이고,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2) 매매, 교환 등과 같이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대가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계약의 경우, 쌍방이 계약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임이 원칙이다. 또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또는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할 때에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 · 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이러한 법리에 근거하여 대법원은 부동산 임차권의 양도, 일반 동산의 매매, 권리이전에 등기 · 등록을 필요로 하는 동산의 매매, 주권 발행 전 주식의 양도, 수분양권의 매매 등의 사안에서, 양도인이 권리이전계약에 따라 양수인에게 부담하는 권리이전의무는 자기의 사무에 지나지 않으므로, 양도인은 양수인을 위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계약상대방의 재산을 보호 · 관리하는 데 있지 않은 이상 계약의 이행 단계에 따라 계약 상대방에게 계약 목적인 물건이나 권리가 귀속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약상 급부의무를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는 전제에서, 동산 양도담보설정계약 등을 체결한 채무자가 담보 목적물의 임의 처분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 상실시키는 행위에 대하여 채권자의 담보권 취득 전후를 묻지 않고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같은 취지에서 주권 발행 전 주식 양도의 경우 지명채권 양도와 같이 양도인과 양수인의 의사 합치만으로 권리의 이전 · 귀속이 이루어지지만, 양도인이 양도된 주식에 관하여 양수인에게 회사 이외의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어야 할 계약상 채무를 부담한다 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사무이고 타인의 사무로 볼 수 없다고 보아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행위에 대해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위 대법원 2015도6057 판결 등 참조).
(3) 채권양도계약에 따른 채권양도인의 지위도 이와 달리 볼 수 없다.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의 양도에 관한 의사 합치에 따라 채권이 양수인에게 이전되고, 채권양도인은 채권양도계약 또는 채권양도의 원인이 된 계약에 기초하여 채권양수인이 목적물인 채권에 관하여 완전한 권리나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의무를 부담한다. 즉, 채권양도인은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거나 채무자로부터 승낙을 받음으로써 채권양수인이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도록 할 계약상 채무를 진다. 이와 같이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으로 하여금 채권에 관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하게 해 주지 않은 채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처분하거나 직접 추심하여 채무자로부터 유효한 변제를 수령함으로써 채권 자체를 소멸시키는 행위는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자신의 채무를 불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에게 채권양도와 관련하여 부담하는 의무는 일반적인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급부의무에 지나지 않으므로,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어떠한 재산상 사무를 대행하거나 맡아 처리한다고 볼 수 없다.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은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5] 판례 변경
이와 달리 채권양도계약을 체결한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그 금전은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 사이에서 채권양수인의 소유에 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채권보전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보관자 지위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채권양도인이 위 금전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한 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7. 5. 11. 선고 2006도4935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예상지문)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하고 임의소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 (X)